[경제플러스=한준기 칼럼리스트]

- 나를 키운 그 사람들

요즘 SNS상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는 한 직장인 공감만화를 보면 영혼 없이 일하는 직장인, 그저 퇴근시간만 바라보며 일하는 직장인, 하기 싫지만 억지로 일하는 직장인의 모습이 등장하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대한민국 직장인들의 행복지수는 바닥에 떨어져 있고 기업의 고민도 깊어만 가고 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의 이면에 가장 크게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은 사람과의 관계이다. 특히 우리 주변에 속된말로 꼴사납게 날뛰어대는 ‘꼰대’와 같은 상사나 선배가 있다면 직장으로의 출근길은 마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모습을 연상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회사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해서는 일단 집으로 들어오면 함구를 했음에도 제법 눈치가 늘어난 내 집사람은 알고 있다. 자신의 남편이 단 한번도 평범하고 무난한 보스를 만난 적이 없다는 것을. 그렇기에 이 사람은 “ 당신이 지금까지 직장생활 하면서 만났던 상사들을 생각하면 당신은 참으로 억세게도 상사 복(福)은 없는 사람인 것 같아.”라는 말을 간간히 하곤 했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한 때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면서 무언의 동조를 했던 것 같다. 그러나 불혹을 넘어 반백의 나이를 지나는 이 시점에서 뒤돌아보니 역설적이지만 나는 참으로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는 것을 조금씩 깨우치게 되었다.

그렇다. 나를 키운 건 어쩌면 항상 만만치 않은 또한 너무나도 까다롭고 변죽이 심한 나의 보스들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이제는 묘한 ‘애증(愛憎)’의 감정을 느낄 때도 있고, 정말 인간적으로 존경하는 분들도 생겼지만 적어도 그 당시에는 참으로 그들이 원망스럽고 미웠다.

그들은 정말 요즘 밀레니얼세대들이 말하는 ‘꼰대’ 수준을 넘은 ‘지랄 같은’인간들이었다. 그런데 그 지랄 같은 인간들이 이제는 어디 가서라도 기죽지 않고 명함을 내밀 수 있는 전문가로 나를 키워냈다!

- 잊지 못할 진짜 남자 vs. 그 남자

유난히 기억이 나서 잊지 못할 윗사람이 두 분 있다.

조명현 대대장님! 내가 여전히 가끔은 그리워하면서 고마워하는 분이다. 최전방 육군 모 부대에서 중위로 만기 전역을 하고, 현대그룹 공채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딛고 혈기왕성하게 좌충우돌하며 직장생활을 할 때까지만 해도 이따금씩 전화도 드리고 안부편지도 보내드렸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서로 연락이 두절되었다. 이제와 생각을 해보니, 내 커리어와 비즈니스의 기본기는 이 분한테 사실 다 배운 것 같다.

그 덕에 현대에 입사한 후 신입사원임에도 많이 헤매지 않고 업무를 처리했던 것 같고, 제법 높은 자리에 올라와보니 그 때 배웠던 것들이 깊게 우려낸 국물처럼 오히려 더 제 맛을 내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특히 유능한 참모로서의 업무 자세라든지 윗사람을 모시는 기본철학까지도 말이다.

그런데 이 분이 참 나를 엄청나게 힘들게 만드셨다, 성격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꼼꼼하시고 불같이 폭발하실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한 번은 보고서가 못마땅하셨는지 결재 서류를 갈기갈기 찢어버리신 후, 나의 면전에서 허공에 던져버리신 적도 있으니까.

그래서 그 밑에서 일하던 인사장교들이 몇 달을 넘기지 못하고 경질되곤 했는데, 나는 참 너무 둔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용케도 거의 2년 가까이를 버티고 만기 전역을 했다. 그렇게 욕을 하시고 업무적으로 박살을 낼 때는 심장이 쫄깃해 짐을 느낄 정도로 무자비하셨지만, 적어도 나에 대해서만큼은 뒤로 나쁜 감정을 품지 않으시고, 끝까지 애정을 갖고 대해주셨다.

철저한 비주류 출신으로 군인으로서 시대를 잘못 만나신 듯 보였고, 온갖 불리하다는 조건은 다 지니고 계신 듯했으나, 항상 최고의 전투 성과는 물론이요 다른 지휘관들도 다 인정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빈틈없는 부대운영을 하셨다. 어린 내가 어찌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었겠는가?

지금 생각해보니 참으로 치열하게 노력하시면서 자신의 핸디캡을 극복하셨을 것이고, 그의 기대수준과 속도에 부하장병들은 죽어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일까, 몇 몇 장교들은 별의별 ‘빽’을 동원해서 후방으로 도망(전출)을 가기도 했다. 기대고 비빌 언덕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었던 나는 그냥 그 분을 옆에서 전방을 지키는 수 밖에는 별다른 도리가 없었는데, 그것이 나의 근성을 키워놓았던 것 같다.

또 한 분의 상사는 내가 처음으로 매니저가 되었을 때, 만났던 분인데, 학벌도 좋았고 여러모로 점잖게 보이셨던 분이었는데, 이런 저런 방법으로 물밑에서 나를 압박하고 해고시키려고 참 애를 많이 쓰셨던 분이었다. 겉으로는 합리적인 듯한 모습을 보이는 척 하셨음에도 정말 표리부동(表裏不同)의 리더십을 보이셨다.

이따금씩 ‘왕따’까지는 아니지만 ‘은따’를 시키기도 했고, 칭찬과 훈육을 늘 반대로 하셨는데 사장님과 회사의 거의 모든 매니저와 임원들이 기뻐하고 인정하는 공적에 대해서는 단둘이 있을 때, 조용히 지나가는 듯한 말로 짧게 “수고했다”라는 표현으로 대신했고, 질책이나 생산적이고 건설적인 피드백을 제공해주어야 하는 부분은 전 부서원들이 다 모여있는 회식 자리 같은 곳에서 대놓고 하셨던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스타일의 관리자이었다.

오죽했으면 누적된 스트레스로 너무 자존심이 상한 나는 흡사 ‘울화병’직전까지의 이상 증세가 나타나 종합 정밀검진까지 하는 처량한 신세도 되어보았다. 남모르게 사표를 몇 번 쓰면서도, 다른 곳의 러브 콜이 있었음에도 바보처럼 끝내는 그곳을 떠나지 않았다.

버티는 힘을 배울 수 있었고, 결국은 시간이 흐를수록 대표이사 사장님과 주요 매니저들로부터 지지를 받게 되는 역전의 상황까지 가게 되었다. 물론 승진에서도 누락되고 중요한 포상에서도 제외되는 사건도 경험했지만 위기는 어떻게 관리하고 또 어떻게 돌파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바닥까지 내려가서 몸으로 터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신 분이니, 이 분도 고마운 분이 아닐까?

- 우리는 어떤 카드를 선택할 수 있을까

꼰대들과 함께 생활하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몇 가지로 정리된다.
첫 번째 카드는 상사의 변화를 기대하고 응원해주는 것이다. 사람은 쉽사리 변하지 않기에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지만, 그래도 믿기지는 않겠지만 지금 이순간에도 리더십 등을 공부하면서 변화하려고 애쓰는 관리자들도 있다.

두 번째 카드는 맷집을 키우면서 인격을 수양하면서 훗날을 도모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중간에 정말 이상적인 조건의 직장이 나타난다면 그 때 떠날 수도 있다. 또 하나의 카드는 우리가 실력을 키워서 상사를 치고 올라가서 그 자리를 차지해보는 것인데 너무 대담한 옵션일까? 물론 또 다른 하이브리드형 옵션이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우선 인위적인 무리한 이직은 금물이다. 다만 “ 사람의 피를 말리고 모멸감마저 느끼게 하는 정도의”상사들을 통해서 어떤 교훈을 얻을 것인가를 냉정하고도 진지하게 생각을 해보아야 한다. 어쩌면 무조건 이해해 주려 하고 사랑으로 감싸주고 무한정 기다려주는 상사가 어쩌면 결코 좋은 상사가 아니라, 훗날 최악의 상사로 재평가 받을 수도 있다는 사실 역시 한 번쯤은 곱씹어 볼 만하다.

까다로운 윗사람을 만나면, 내가 그냥 지고 가야 할 십자가려니 하면서 차라리 마음을 비웠으면 좋겠다.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 우리가 다른 이들과 궁극적으로 차별화되는 이유가 바로 그런 지랄 같은 인간들을 능히 대하고, 참아내고, 끝내는 다룰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정말 위장된 축복이 아니겠는가! 우리가 나중에 높은 자리에 이르렀을 때는, 치졸한 ‘꼰대’가 아닌 합리적이고 체계적으로 부하직원들을 리더로 키워낼 수 있는 그런 리더들이 되면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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