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플러스=한준기 칼럼리스트] 

- 채용박람회에서 만난 사람들

참 오래간만에 채용박람회에 나가보게 되었다. 그날따라 유난히 생각했던 것 보다도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회사의 부스를 찾아왔는데, 평소와 다르게 크게 거의 두 부류의 사람들만이 찾아온 듯 하다.

나이가 제법 지긋하신 중년의 구직자분들이 첫번째 그룹이요, 이제 대학을 막 졸업하려는- 아니 어떤 친구들은 이제 대학2,3학년인데도 상담을 받겠다고 찾아왔다- 젊은 학생들이 그 두번째 그룹이었다.

옛날의 어른들께서는 사람들의 다양성을 이야기하시면서, “십인십색(十人十色)”이라는 표현을 종종 쓰셨다.

즉 열명의 사람이 모이며 그들 열명이 각각 자기자신의 고유의 색깔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현대에 들어와서는, 한 사람이 참으로 다양한 면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에서 “일인십색(一人十色)”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고 하는데, 그날 내가 만난 약 50여명의 구직자들은 정확하게 단지 두 가지 색깔밖에 없었다.

중년의 경력직 구직자들은 주뼛주뼛하면서 너무나도 소심하게 어깨도 제대로 펴지 못한 상태에서 자신감없이 상담을 받았었고, 젊은 청년들은 성별에 상관없이, 거주지에 상관없이, 소속학교에 상관없이, 전공불문하고, 오로지 “귀사는 어떤 스펙의 사람을 선발하시나요?” 라는 앵무새와도 같은 질문만을 하고 돌아가는 것이다.

그 시각 이후로 “고개숙인 가장 vs. 스펙쌓은 아이”라는 이 두 조합의 단어는 커리어를 이야기 할 때 내가 즐겨쓰는 표현이 되어버렸다.

중년의 구직자 분들은 한결같이 “지금 제가 실업상태에 있는데, 어떻게 여기 나를 써줄 만한 회사가 있는지 그냥 한 번 알아보러 나왔다.” 라는 말씀들만 하시고, 젊은 학생들은 “제 스펙이 이 회사에 맞는지 좀 봐주세요.” 라는 같은 레퍼토리만을 되풀이했기에 나는 점점 증폭되는 짜증감을 조절하느라 애를 많이 먹었다.

급기야 짜증이 폭발한 내 앞에 두 명의 젊은 대학생이 다시 나타났다. 똑같은 질문을 한다. “이 회사에서는 주로 어떤 스펙을 보시나요?” 그래서 그들에게 또박또박 물어보았다.

“학생이 말하는 스펙이라는 것이 요즘 우리사회에서 너나할 것 없이 입에 달고 다니는 그 ‘스펙’을 뜻하는 건가요, 아니면 본인이 자랑할 수 있는 명확하고 차별화된 특성을 뜻하는 ‘스펙’인가요?” 그 친구들은 내 말뜻을 잘 모르는 듯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 회사는, 그리고 세계적인 다국적기업들은 ‘스펙’ 같은 것은 거의 보지 않습니다.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은 우리 회사의 가치와 우리가 지향하는 인재상에 가장 적합한 사람을 뽑을 뿐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젊은 구직자들이 소위 ‘스펙’이라는 것에 거의 목숨을 걸기 시작하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당사자들은 너무 진지하고 심각하며 ‘스펙’을 쌓는데 엄청난 시간과 금전을 투자하고 있건만, 기업 인사 책임자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는, 솔직히 평하자면, 고개를 갸우뚱할 수 밖에 없는 정말 웃기지도 않는 현상들이다.

최근 들어 일부 언론 매체 등을 통해 그리고 대학의 강의장에서도 이러한 ‘스펙’ 만능주의에 대해 따끔한 질책을 하는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고 있지만 아직도 철없는 그들의 맹신을 바로잡기에는 턱 없이 부족하다. 모양새와 형태가 조금 다를 뿐이지 이는 이미 직장을 다니고 있는 기존의 샐러리맨도 마찬가지다.

경쟁력 있는 ‘스펙’을 쌓아서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것은 중요하나 번지수를 잘못 찾는 엉뚱한 ‘스펙’ 쌓기는 조심 해야 한다.

특히 막연한 불안감에 무조건 영어공부 열심히 하고, 대학원진학하고 해외MBA를 비롯해 외국 나가서 공부하고 오자, 식의 색깔 없는 자기계발을 한다면 이는 전혀 다른 이야기로 끝이 날 수도 있다.

무엇이 중요한지도 모른 채 ‘스펙’을 무슨 우상인양 섬기는 그들의 모습에서 무언가 심각하게 잘못된 방향으로 사태가 돌아가고 있다, 라는 생각이 든다.

‘스펙’. 영어로는 본래 ‘Specification’이라는 단어의 줄임 말이다. 원래 사전적으로는 설계서,설명서라는 뜻으로, 무언가를 만들거나 디자인을 할 때에 필요한 특징들 내지는 요구되는 것이라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A specification is a requirement which is clearly stated, for example about the necessary features in the design of something).

이 전직을 포함한 구직활동과 연관시켜 생각해본다면 ‘스펙’이란 기업에서 직원을 채용할 때 좋은 인재를 선발하기 위해 필요로 하는 것들인데 문제는 바로 기업의 관점과 구직자들의 관점 사이에 어느 순간 어마어마한 간극이 벌어져 버렸다는 것이다.


엉뚱한 스펙에 절대로 목숨걸지 마라
기업이 요구하는 ‘스펙’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지 전에 어쩌다가 맹목적으로 ‘스펙’을 만드는 열풍이 우리 사회에 불고 있는지에 대한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아주 먼 옛날에도 사람을 뽑을 때 보았던 ‘스펙’ 같은 것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다만 ‘스펙’이라는 용어를 잘 쓰지 않았을 뿐이다. 그리고 ‘스펙’을 자주 논할 만큼 구직과 구인시장이 오늘날처럼 그리 복잡 다단하지가 않았다.

그러나 되풀이 되는 경제위기, 상시적인 구조조정, 조직 개편, 그로부터 형성된 인력의 대이동, 그리고 고용 없는 성장 등으로 파생된 믿기 어려운 취업난 등은 우리 모두로 하여금 이전과는 다른 취업 준비를 하게끔 만들었다.

문제는 구직자들이 이러한 현상을 잘못 이해한 것으로부터 시작이 되었다.

‘스펙’이라는 주제를 언급할 때 한 번쯤 짚어보아야 할 것이 우리 기업들의 채용 전형의 변천사이다.

‘입사고시’의 시대: 학력-지식을 우선적으로 인정했던 시대; 서류전형도 심도 깊었지만 국가고시를 방불케 하는 여러 과목의 필기시험을 거쳐 소위 공부 잘하고 머리 좋은 인재들을 선발했으며, 면접은 집단 면접 형태가 주를 이루었는데 ‘감’(感)에 의존하는 면접 패턴도 의외로 높았다. (1970-80년대)

균형 잡힌 인재를 찾던 과도기: 학력-지식-기본기-사회성 모두를 점검해 보고 싶었던 과도기; 서류전형, 필기시험은 여전히 주요 선발 요소 그러면서 점차 높아진 면접의 비중 (1980년대말- 90년대초)

전형 포인트의 전환기: 간판과 성적만으로는 2% 부족함을 깨우친 시기. 잠재력-사회성-팀웍 중심의 시대; 블라인드(blind) 인터뷰 등, 다양한 형태의 면접이 서서히 등장하면서 입사의 당락을 결정하던 전통적인 필기시험이 모습을 감추기 시작함 (1990년대초- 중반)

‘일등 인재’(best person) 중심의 시대: 글로벌 경쟁 시대에 맥없이 무너질 수 없다는 것을 깨우치며 유창한 영어실력과 외국경험을 한 해외 파 영입시도 (1990년대 말- 2000년대 초, IMF경제위기를 겪은 후)

‘스펙’및 ‘Right person’의 시대: 일등인재와 해외 파 의존의 시행착오 후 심층적인 인/적성 검사, 다양한 면접, 심층 면접, 압박면접, Situational Interview(상황 별 면접) 등으로 소위 말하는 ‘Right person’을 찾기 시작함; ‘스펙’이라는 유행어가 서서히 나오기 시작함 (2000년대 초 이후)

‘Advanced- right person’의 시대: 여전히 진화하는 채용 전형절차; ‘스펙’의 유효성에 대한 논란 가열. 핵심역량 중심의 인재로의 변화 (2011년-)

2013년 현재까지 이르는 국내 대기업들을 중심으로 변천되어온 위의 채용 전형절차들을 살펴보면 한 마디로 어떻게 해서든지 조금이라도 변별력 있는 방법을 통해 더 좋은 인재를 찾아보겠다는 노력과 시도의 과정이라고 짧게 평을 해볼 수 있다.

물론 여전히 더 나은 결과를 얻기 위한 건강한 시행착오의 과정 속에 우리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취업난은 가중되고 지원자는 늘어나는데 채용 T/O는 한정되어 있고. 그 과정 속에서 불가피하게 이런 저런 시도하다 보니 ‘결과론’ 적으로 등장한 것이 ‘스펙’이라고 생각한다.

‘결과론’적인 ‘스펙’이지 아예 기업에서 대놓고 우리 회사에 취업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외어학연수를 마쳐야 하고, 해외 유수의 대학을 졸업하든지 해외대학에서 교환학생으로서 학점을 취득해야 하며, 인턴십과 아르바이트 등의 경험이 있어야 하고, 영어 성적은 반드시 몇 점 이상이 넘어야 하며, 공모전 입상과 개인 포트폴리오를 꼭 준비해와야 하며, 등등의 요구조건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경력사원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단순히 해외 MBA를 나왔기 때문에, 회사를 다니는 과정에서 야간 경영대학원에서 학업을 이수했다는 이유가 유수한 기업으로의 이직을 성사시키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시대는 지났다.

우리 기업보다 인재 채용에 있어 더 명확한 포커스를 가지고 앞서있다고 이야기를 하는 글로벌 다국적 기업의 경우를 살펴보면 ‘스펙’에 목을 매는 것이 정말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세계 초일류 다국적기업의 경우에는 사실상 지난 반세기 동안 특별한 외형적인 채용패턴의 큰 변화는 없었다.

물론 핵심역량 중심의 심층적인 인터뷰를 하기 위한 소프트웨어는 정기적으로 업그레이드를 시키고 있고, 어떻게 자신들의 기업을 매력적인 일터로 포장해서 더 좋은 인재를 끌어 들일 것인지에 대해서도 고민을 하고 있고 좋은 인재를 잘 선별해 내는 역량 있는 면접관을 훈련시키고 키워내는 데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엉뚱한 ‘스펙’을 내세워서 사람을 채용하는 어리석은 오류는 절대 범하고 있지 않다.

이제 평생커리어를 구축해야만 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리고 취업 그리고 이 전직은 그 커리어 시작의 하나의 출발점일 뿐이다.

물론 성공적인 취업은 중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 성공적인 취업이 계속 연속선상에서 더 의미 있는 스토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것은 엉뚱한 ‘스펙’으로는 절대로 만들어 질 수 없는 것이다.

취업을 위해 요구되는 그리고 시장에서 필요로 하는 스펙이 아닌 엉뚱한 스펙을 쌓는데 의미없는 시간과 금전을 투자하지 말아야 한다.

많은 구직자들이 잘 못 알고 있는 그러한 ‘스펙’으로 인해 지속적인 취업 그리고 이 전직에 성공하고 롱런하면서 경쟁력있는 커리어의 가치를 쌓아가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본인을 컬러를 찾지 못하고, 또 잃어버린 세월때문에 그리고 뒤늦게 불기 시작한 말 같지도 않은 스펙이 없다는 것 때문에, 자신이 누구인지를 모르는 ‘고개숙인 가장’들도 그리고 맹목적으로 ‘스펙쌓는 아이’들도 이제는 우리 사회 속에서 사라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꿈과 같은 소망을 한 번 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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