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49일의 매일 5억원씩 254억원의 벌금을 교도소 화장실 청소 등 몸으로 때우게 된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 판결을 놓고 논란이 확산된다.

1일 5억원은 삼성 이건희 회장 1억1000만원, SK텔레콤 손길승 명예회장 1억원, 부영 이중근 회장 1500만원, 두산그룹 박용오 회장 1000만원과 비교해도 전례가 없기에 국민적 공분을 사게 하고 있다.

허 회장은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조세포탈 등의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508억원을 선고받았으며, 항소심에서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 벌금 254억원으로 감형된 뒤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노역 일당은 2·3심에서 1일 5억원으로 정해졌다.

이에 따라 벌금과 세금, 채무 등 634억원을 내지 않고 도피했다 지난 22일 귀국한 후 광주교도소 노역장에 유치된 허 회장은 50여일만 노역하면 벌금 254억원을 모두 탕감받을 수 있게 된다.

이런 황당한 일이 벌어진 근본적인 원인은 현행 향판 제도에 있다. 향판은 수십 년 이어져 온 법원의 인사 관행인데, 서울과 지방을 오가지 않고 본인이 희망하는 한 지역에서만 근무하는 판사를 말한다.

하지만 향판은 한 지역에서 오래 근무하다 보니 지역 유지와 결탁해 법관의 양심을 내던지는 사례가 빈번해 그 폐해가 전관예우 못지않다는 소리를 듣고 있다. 그러던 중 이번 사건이 발생했다.

이번에 허 전 회장에게 하루 5억원씩 벌금을 탕감해 준 판사는 무려 30년 가까이 광주지역에서만 근무했다. 대주그룹은 이 지역에 뿌리를 둔 기업이기다. 결국 판사라는 직분보다 지역 혹은 친분이라는 사사로운 감정으로 재판을 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

더욱이 허 전 회장의 판결에는 검찰도 일조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허 전 회장을 기소한 검찰은 2008년 9월 벌금 1000억 원을 구형했으나 기업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이유로 선고유예를 재판부에 요청했다고 한다. 법에 따라 최대 형량을 요구해야 할 검찰까지 선고유예를 요청했다. 1심 선고 후 검찰은 항소도 포기했다. 만일 이 재판이 대법원에서 정식적으로 행해졌다면 이번 황제노역 판결과 관련한 논란은 없었을 것이다.

결국 법복을 입은 자들의 어이없는 일 처리로 사법기구 불신이란 국민의 골만 더욱 깊어진 셈이다.

이번 사건은 '환형유치' 제도의 문제점도 그대로 노출했다. 환형유치는 벌금 또는 과료를 내지 못하는 범죄자에게 교도소에서 노역을 대신하도록 하는 제도다. 형법에선 법원이 벌금·과료를 선고할 때 노역장 유치기간을 정해 동시에 선고하되 벌금은 3년 이하, 과료는 30일 미만 노역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법조계에선 허 전 회장의 노역 기간과 일당은 3년에 3000만원을 넘길 수 없다고 본다. 그럼에도 이러한 황당한 형이 확정돼 누가 보더라도 봐주기 판결이란 비난을 피할 수 없는 실정이다.

대법원은 이번 황제노역에 대한 비난 여론이 들끓자 노역 일당 뿐 아니라 3년으로 돼 있는 현행 노역 유치 기간의 적정성까지 포함해 폭넓은 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근본적인 대책으로 보기 어렵다. 고인 물은 썩게 마련이다. 미봉에 그칠 것이 아니라 현행 향판 제도를 대수술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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